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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27일 마지막날, 레온 기차역에서. 결국은 다시 피터를 보지 못했다. 산티아고 길의 삼분의 2 지점, 이 곳 레온까지 점을 찍고, 일단 독일로 가기로 결정했다. 지도 없이, 어디를 가야한다는 목적 없이 여행할 수 있을까. 정말 무전으로, 먹을 수 있을 때 먹고, 잘 수 있을 때 자는 식으로. 할 수만 있다면 더 거칠게 살고 싶다. 이런 생각을 감히 할 수 있는 것은 그나마 이 곳 유럽이 안전해서일테다. 인도 같으면, 이미 상황이 막무가내니까 나까지 막 살기 힘들 것이다. 길 위에서 만난 인연이 길 위에서 헤어지듯 그렇게 지난 며칠 간을 같이 보냈던 피터도, 나머지 친구들도 어디론가 갔다. 나를 기다리고 있지 말고, 자기의 길을 가고 있기를. 산티아고에서 다시 자신과 만나기를. 나는 아니타_코끼리를 다시 꺼내서 살펴보고, 지퍼락에 넣은 뒤 가방 한 쪽에 잘 집어넣고 마음 속으로 피터에게 인사한다. 안녕. 꼭 다시 보고 싶었는데. 산티아고 길을 잘 걸으라고 안아주고 싶었는데. 그렇게 미적지근하게 발걸음을 떼던 어제 아침이 마지막이었네. 늘 이렇게 준비하지 않은 만남과 준비하지 않은 이별이 오는 것 같다. 거리의 모든 빨강이 내게 말을 건다. 어떤 기억을 기점으로 해서 원래는 늘 그 자리에 있던 것이 새로운 의미를 갖게 되는 것. 그것이 경험. 나는 이제 빨간 티셔츠만 봐도 얼굴을 살필 테고 나무 그늘마다 웃음 소리를 기억할테고 거리의 안전막대마다 로빈을 떠올리겠지. 삼계탕을 먹을 때마다 그들에게는 낯설고 특이한 한국음식으로 기억될 것도 생각할테고. 연신 나를 찍어대던 너의 그 커다란 카메라 렌즈도. 니가 찍어 준 내 흑백 사진. 이 기차역에 도착한 것은 열한 시가 되기 전이었다. 지금은 두 시 반이다. 세 시간이 넘도록 별 일 하지 않고 있어도 시간이 잘 간다. 혼자 시간을 보내는 것에 더 익숙해진다. 부르고스에서 레온까지. 평탄한 길. 지겨운 길이라고들 한다. 이 길이 힘든 것은 험난해서가 아니라 너무 단조롭기 때문이다. 하지만 매 순간 다른 생각들, 다른 기억들과 만났다. 단조로울 틈이 없었다. 그 몽환적이었던 아침도, 언덕 위 아무것도 없던, 밀밭만 있던 높은 고원도 원망을 잔뜩 하며 걷고 있는데 앞에 나타난 피터도, 고작 30미터 앞에서 걷고 있는데 아무리 용을 써도 따라잡지 못한 것도, 모두 모두. 이 길 위에서 살이 빠지던가 살을 빼야 한다는 생각을 버리던가 둘 중 하나가 해결이 안 나면 나는 계속 고통스럽겠지. 사랑 없이 혼자가 되던가 제대로 사랑하던가 구태의연 속이지 말고 혼자가 된다면 혼자인 스스로를 지킬 힘이 생기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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