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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인디언소녀.
바람이 둔중한 부피감을 갖고 거대한 하늘에 가득 차 있었다. 아침에 나선 길은 높은 가로수 사이로 패인 길이다. 하늘은 약간 어둡고, 구름이 푸르스름한 보랏빛으로 얼룩져 있어서 꿈 같았다. 몽환의 세계에 온 몸이 잠기는 듯 했다. 어느새 나는 양갈래머리를 땋고 검게 그을린 피부를 가진 눈 맑은 인디언 소녀가 되었다. 사실, 어제 부르고스를 넘어 고원에 올라갔을 때, 이미 만난 소녀다. 천 년 전에도 어쩐지 똑같은 풍경이었을 것만 같은 거대한 밀밭 능선의 한 켠에 서 있었다. 생의 한 번은 여기에서 대충 기운 옷 나부랭이를 걸치고 맨발로 뛰어다녔을 것이다. 말이 별로 없는 소녀였을지도 모른다. 이 날 쓴 엽서는 그 소녀가 보낸 것이다. ![]() #3. 명분 숙소에서 피터를 만나기는 하지만, 이제 길을 계속 같이 걷는 것은 아니다. 걷는 속도가 달라져서 피터가 대게 먼저 간다. 혼자 걷다 보면 만나는 날도 있고 아닌 날도 있다. 길에서는 혼자다. 오후에 알베르게에 짐을 풀고 슈퍼를 다녀오는데, 사진 찍으러 다니는 피터와 마주쳤다. 길에서 내내 못 봤더니 하루 상간인데 오랜만이라는 느낌이 든다. 인터넷을 잠깐 하는데 피터가 맞은 편에 와서 앉는다. 이럴 때 모니터 스크린이 보이는 방향으로 나란히 앉지 않는다. 허락을 구하기 전까지는 내가 쓰고 있는 화면을 함부로 들여다보지 않는 배려가 고맙다. 대신 그는 나를 빤히 들여다본다. '너랑 같이 있을 시간이 이제 얼마 없잖아. 집중하고 싶어.' 특별히 대해도 충분할 이유를 스스로 설명하고 나서야 그는 솔직해진다. 셔터를 더 자주 누른다. 내가 자리에서 일어날 때마다 졸졸 따라다니면서, 기록하듯 사진을 찍는다. 나중에 그가 보내준 것은 고작 3장에 불과했지만. 3-4일 후면 나는 이 길을 접고 독일로 떠난다. 독일에서 즉흥춤페스티벌이 있다. 단숨에 산티아고까지 가고 싶지만 페스티벌은 이미 몇 달 전에 한국에서 등록해 놓은 상태다. 애당초 유럽에 온 것도 그것 때문이다. 독일에 가서 다음 일정은 결정한다. 스페인으로 돌아와 마저 걸을 수도 있고, 독일에서 다른 곳으로 갈 수도 있다. 오늘 밤은 모두 모여서 알베르게 거실 쇼파에 앉아 있다. 로빈이 개미한테 이스트를 먹이면 펑 터져 죽는다고 우긴다. 이 청소년의 말은 믿을 수 없다. 부르고스보다 서울이 크냐고 로빈이 물었을 때, '아마도'라고 대답했다가 완전히 책 잡혔다. 지금 로빈은 다른 이들에게 '칼리 얘 완전 웃겨. 아마도래. 서울은 베를린보다도 커.' 하고 일러 바치고 있다. 깔깔. 내 특유의 큰 웃음이 멈추질 않는다. 곧 떠나는 나의 일정 이야기도 한다. 거샤, 알리시아, 로베르토가 먼저 자러 갔다. 피터, 어쩐 일인지 내가 잘 때까지 자리를 뜨지 않는다. ![]() +전형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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