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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에 피터가 나왔다. 작별인사를 하는데 피터가 전혀 아쉬워하지 않았다. 깨고 나서도 서운함이 남아서 괜히 마음이 이상했다. 꿈과는 달리 일찍 준비를 마친 피터가 같이 출발하려고 1층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다. 꿈과 어제 걸었던 길에 대한 느낌을 수첩에 쓰고 싶어서 피터에게 먼저 출발하라고 했다. 걷기 시작하면 노트를 하기가 힘드니까, 생각이 떠오른 김에 쓰고 싶어졌기 때문이다. 피터는 망설인다. 기다려 줄께. 아니야 괜찮아 먼저 가고 있어. 곧 따라갈께. 발이 좀체 떨어지지 않는지 미적거리다가 피터는 그래, 그럼 먼저 갈께. 하고는 출발했다. 오랜만에 아침에 일기를 쓸 수 있어 신이 났기에 요 며칠 간 기록해두지 못했던 느낌들까지 적고 한참 있다가 일어났다. 어제까지 걸었던 피터의 걸음걸이를 생각하면, 곧 따라잡을 수 있을 것이다. 부르고스로 들어오는 관문은 삭막한 풍경 그 자체였다. 산티아고 길 삼분의 일 지점, 길에 끝없이 이어지는 도로와 커다란 트럭들의 굉음, 자동차 공장들 때문에 귀는 멍멍하고, 아스팔트길은 발을 답답하게 막는다. 젊은 녀석 로빈이 어제 봤다고 아는 척을 한다. 발랄한데다가 빨리 걷고, 수다도 많다. 독백 뿐 아니라 질문도 많다. 십대 다웠다. 이 녀석이 아무리 보송보송 미소년이기로서니, 나는 어제 피터와 걷던 길이 그리워지기 시작했다. 천천히 걸을 수 있었고, 아무 말 하지 않아도 미안하지 않았다. 가다가 힘든 길이 나오면 뒤로 돌아 걷기를 하면서 같이 웃곤 했다. 오늘은 뒤돌아 걸어도 별로 재미가 없다. 결국 부르고스 도시 안으로 들어와서 같이 가자는 로빈을 보내고, 카페에 죽치고 앉았다. 창가에 앉았다가 마음이 안 놓여 다시 길에 내다놓은 테이블로 옮겨 앉았다. 물론, 나보다 먼저 출발했으니 내 뒤에 있을리는 없지만서도, 안 쉬고 열심히 걸어 왔으니까 어떤 순간에 내가 앞질렀을지도 모른다. 그게 아니라면 이렇게 만나기 힘들수가 없다. 만나야 한다고 생각하니까 길을 즐길수가 없게 된다. 이제 못 본다고 생각하면 정말 아쉽지만 여기서 이대로 엇갈린 채 계속 가 버릴 수도 있다. San의 말대로, 길에서 만난 사람은 길 위에서 헤어지는 것이 맞겠지. 하지만 아직 충분히 못 만났는데. 모든 것이 이유가 있어서 일어난다는 연기설을 믿는다면, 이렇게 엇갈림으로써 내가 피터랑 함께 걷는 것을 좋아했다는 걸 더 잘 느끼게 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것만으로도 고마워할 일이긴 하다. 같이 있는데 피곤하지 않고, 따뜻하고, 재미있는 사람. 고작 이틀을 같이 걸었을 뿐인데 아주 오래 만난 사이같다. '니가 그 표식 위에 첫번째 돌을 놓는 사람이 되겠네' 'or not!' 하고 말하면서 내가 방심하는 사이 나보다 먼저 달려가 돌을 올려놓던 모습이나 무심하게 아닌 척 하면서 셔터를 누르는 것이나 내가 뒤돌아보기를 기다리는 것이나 칼리, 칼리, 아니타, 아니타라고 부르는 것이나 아리랑을 열심히 따라 배우던 것이나 '미친샬로나'라는 괴상한 폴란드 노래를 가르쳐주던 것이나 침대 밑으로 내려온 발을 장난스럽게 건드리는 것들 혹시 그 가벼운 아침인사가 마지막이었다면, 내 꿈은 예지몽인 것일테다. 어쩌면 이렇게 어떤 것들은 소중하다고 느끼기도 전에 나를 떠나버리는지도 모른다. 충분히 사랑할 틈을 주지 않고 아쉽지만, 끝이 나는 것도 있나보다. 피터를 다시 만나든, 만나지 않든, 나도 다시 걸어야 할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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